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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人

여행이바구

by 세팔 2006. 6. 2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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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시런 제목 시리즈라도 하나 만들어야겠다.
(사실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은 너무너무너무 촌시러버서 바깠따)

단, 이 독서라는 제목은 한비야아줌마 (누나? 음..)의 책을 읽으면 촌시러움이 사라지는 제목이다.(아, 그래도 쫌더 멋내고자 옆에 있는 중국애한테 물어서 '독서인'이라는 단어를 캐내었다. 중국의 옛표현으로 학생이라는 의미란다)

중국견문록을 완독했따.
정말 오랜만에 읽는 '교''양''서''적'이다.
진짜루 이런거쫌 자주 읽어주어야 머리에 윤활유가 낑기가 잘 돌아가는데.

맨날 unscented filter 니 lie 미분이니. extended kalman filter니 이런것만 낑낑거리고 읽고 있으이 (이런거 진도도 잘 안나간다. 한 10쪽 읽기 위해서 머리를 얼마나 굴리고 계산과 개인 시뮬레이션을 얼마나 해보아야 하는가.. )

끝까지 '사람냄새'를 풍겨 주는 책이었다.
책에 나왔던 시를 하나 베껴 적는다.

그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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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디, 나는 이 시를 베껴 적으면서 이 시를 깊이 감상하기 보단, 남들이 반드시 한번씩 입어 보았을 옷을 이제서야 뒤늦게 혼자 입어보고 좋아라 하는 그런 바보같이 내 자신이 보이는 것 같아 싫어지는 사람이다. ㅋㅋㅋ. 청개구리도 상 청개구리지.

나의 문제는 '안믿는 것'에 있다.
철저하게 믿는 것이 없다. 모든게 '언젠가는 나를 배반할 것'이다.
이걸 적으면서도 '어허 이거 또 자기자신에 대한 연민을 구걸하는 쑈를 시작하는 거구먼'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도 그런 반감보단 이말의 '당위성'이 더 나를 토닥거려 준다.

정말 그런거다. 다들 다 알고 있는 거다.
문제는 그런걸 알고도 그런 걸 몇번이나 당하고도 '사람냄새'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런 사람들은 옆에 있기만 해도 내게 그런 '사람냄새'가 번져 오는 것 같다. 물론 일본에서는 '바쁨'때문에 이런 사람 만나기가 하늘에 별따기이지만.

'폐 안끼치기 작전'
일본에 와서 철저하게 몸에 베여버린 처세술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폐안끼치기'작전.
그런 작전 쓰고 있다가는 결코 사람과 깊이 만날 수 없다.
골백번을 만나도 그냥 그런 사이다.
그가 싫어해 하고 그가 귀찮아 하고 그가 부담스러워할까봐,
정해진 것 밖에 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의 원인은 바로 나는 이런 '치근덕대는'사람을 아주아주아주 싫어하다는 것이다.
이런 내 자신의 습성을 내가 봄으로 내가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치근덕 대는 걸 참아 넘어갈 수가 없다. 내가 끼쳤을 지도 모르는 '치근덕'이 '바보스러움'이 머리에 떠오르기만 해도 고함고함을 지르며 미칠 것만 같으니, 원. 혼자 중얼거리고 고함지르는 70%이상이 바로 느닷없이 떠오르는 나의 이 '타인에 대한 바보스러움'때문이다.

머 덕분에 굿윌헌팅의 몇몇대사를 아주감동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이렇게 적고 나면, 이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내가 '비효율적'이고 '감상적'인 것으로만 보인다.

'사람냄새'는 이렇게 글로 적고 감상적으로 느끼고 논할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딘가 깊수욱히 숨어 있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냄새'보다는 '효율'을 택해야 겠다.
상자안에 해야하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귀찮아 하지 말고 꼬박꼬박 해나가기.
그런 사람의 냄새라도 풍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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