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팔 2008. 4. 11. 00:07

도보 - 버스 - 중앙선 - 이노까시라선 - 도보 로 이어지는 출근길
10분안에 도착하던 버스가 어떤 길에 접어들더니 대체 진전이 없다.
다들 두리번 두리번 하며 막히는 앞길을 몇번이고 쳐다 보는데..
물론 내속에서도 하염없이 막히는 교통정체에 대해 행하는 유일한 태도는 죽자사자 앞길 어디서 막히는지를 찾아 보려는 행동이 저절로 나온다

이럴때 이런 방송이 나오면 내속이 후련하려나?

"지금 전방 몇 m 어느 길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자동차와 트럭이 충돌, 트럭 운전사 A씨가 자동차흐름을 확인하지 못한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입니다. 트럭 운전수 A씨와 그를 채용한 회사에 책임이 있으니 그들에게 마음껏 화를 내어 주십시오. 그들에 대한 연락처는... 입니다"

하염없이 앞만 보고 시계보며 짜증내던 사람들. 다 똑같은 마음이었을까?
'그러려니..'하고 서로 이야기하며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아니라, 초조해진 개인들이 자기 일정을 흐트리고 있는 책임을 추궁해서 미워해야 할 또다른 개인을 알고 싶어해 안달인 아침.

동경서쪽지역은, 이미 많이 주택가가 되었지만 아직 군데군데 무언가를 재배하는 텃밭들이 주택가들 사이에 남아 있는데. 막힌 버스안에서 그런 밭을 둘러싸고 있는 철장의 색깔을 보며
'똑같은 철장색을 한 밭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

자그마한 텃밭조차도 언젠가 일어날 줄 모르는 도둑질 때문에 철장을 쳐버려 도둑질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그나마 밭을 보고 맘을 푸근히 하기 보단, 더 삭막해지기만 하는 도시를 느껴야하게 되는 건?

더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내려고 바둥바둥하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 보인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 사람의 힘을 멀리 팽개쳐대고 시스템으로 사람의 약점들을 극복하려는.
뛰어난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뛰어난 사람이고, 그런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달려가고, 그런 뛰어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참지를 못한다.

역이나 좁은 길에서 길을 막으면서 천천히 걷는 사람을 뒤에서 대체 참아하지 못하는 나는.
국민학교 1학년 때, 대구시내 '버스시스템'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어, 친구집으로 도움을 요청하러 울며 들어갔던 나는.
선진시스템, 서구화되고 앞서 보이고 효율적으로 보이는 시스템을 헐레벌떡 좇아가고 있는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읽었다
책의 첫장을 읽으면서 부터, 1900년대 초의 어느 유럽어촌의 비오는 새벽의 어부들이 들끓는 주막이라는 배경에서 부터 끌리기 시작해서 출퇴근길 읽은게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대체 움직일 생각이 없는 중앙선에서 읽은 오늘은 사뭇 가슴이 뜨겁기 까지했던.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그저 시스템에 만들고 적응하고 그런 시스템이나 나혼자의 어둠속에서 즐기고 있는 나는, 우리는 단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스타브리다키!를 허공에 외치기만 하는 것으로나 가슴 벅차하다가, 시스템에 차여 그 존재마저 잊어 버린다.

우리는 주어진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시스템에 얹혀져 시스템이 주는 모이를 낼름낼름 주어먹고 거기서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지내기만 하는가?

바로 지금 내방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구비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남들보다 2,3년 뒤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