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텃밭
5월 31일
학교 오픈캠퍼스 막날, 쫑파티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역에 도착하니 11시반이 넘어 있음. 버스끊김
처음 심야버스 (평상시의 2배, 10분간 5코스 타고가는 데 380엔,헉)를 탔다.
심야버스.
값도 비싸고 이름도 묵직하다만, 작은 일본 버스에 10명 안팍이 타있고
게다가 3일 연속 내리는, 차가운 비가 추적추적 계속 내리니 더욱 심야스러웠다.
단,
앞자리에 잠든 2살도 안되어 보이는 여아를 품에 안은 아저씨
약간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있는데,
나이 먹어 딸하나를 책임지려 이 늦은 시각, 비오는 심야버스안에서 딸을 품고 있구나
하는
심야만의 오롯한 느낌
집앞 (그래도 걸어서 한 10분?) 정거장, 문화여자대학교앞에 내리니 12시 땡이다.
낼부터 6월이라는데, 3일 내두록 내린비에 쌀쌀한 바람이 정신을 상쾌하게 하기에, 맨날 걷던 큰길 말고작은 공원 뒷길을 따라 걸어봤다.
내가 사는 東京都小平市上水南町.
동경의 외곽주탁지인지라 조용하기만 하고 도통 사람없는 좁은길.
그래도 비가 막 개인 밤하늘을 가로등이 쭈욱 비추고 있어서 기분 좋게 뚜벅뚜벅 혼자 걷는데
턱하고 텃밭이 나온다.
비그친 야밤의 쨍한 검은 하늘이 그 텃밭위로 확 터져나오니,
잠시 발을 멈추고 밤수풀냄새와 달이라도 찾아보게 한다.
어둑어둑한 텃밭 위의 비갠 하늘을 혼자 바라보면서 느낀 기분은..
여전히 나는 이곳의 주민이 아닌 이땅의 이방인이구나.
멀끄러미 남의 텃밭 넘어 밤하늘이나 쳐다 보는 이방인이구나
그.
이방인으로 인적없는 곳에 혼자 서서 검은 하늘에서 달찾는 이방인감을 느끼는 건 좋은데..
그 때 달덩어리 처럼 쓰윽 고개를 내미는 건,
딸을 품은 한 아버지의 흰머리 같은 현실감. 이다.
가로등 불빛밖에 없는 싸늘한 이 남의 땅에서, 잠자는 현실감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모처럼 조용히 쨍한 밤하늘을 원없이 바라보며 한 껏 즐기려 하는데, 이 땅의 아저씨들의 현실감이 기어 올라오다니...
에이, 하고 불꺼진 (내지는 방음셔터를 내린) 주택가를 터벅터벅 걷기를 다시 시작해도, 날 엄습하는 건 혹 강도라도 나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보다 자꾸 생각나는 2살배기 여아의 잠자는 얼굴 옆에 희끗희끗 보이던 아저씨의 흰머리가 주는 불안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