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미디어

Material 아저씨들

세팔 2008. 6. 13. 13:05
君師父일체
군은 없어진지 오랜지고
사의 지위는 휴대폰이하로 떨어졌고
이제 부의 차례다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원래 없는 것이니까
모든게 material화 되고 realistic하게 되어 phisycal한 눈으로 본다면, 군이고 사고 부고 내 위에 있을 이유가, 내가 그들을 존경하고 높여줄 이유가 없다 (아주 극소수의 이상적인 몇명을 제외하고는).

그래서 예전엔 더 높여주기 위해서 이런 의식을 형성시켰으며, 이런 의식으로 인해 군/사/부들은 존경받기 위한 태도를 가끔 행하기도 (랄까 주변에서 만들어주는 '이미지'에 의해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약간 세뇌되어) 했던 것이었을 터.

왜이렇게
'스승다운 스승이 없다'고 하는 시대로 되어버렸을까?
존경할 만한 웃사람이란, 우리가 원하는 웃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미국인디언 추장들 같은 그런 모습?
무언가 한마디 던지는 말에 우리 가야할 길이 있는?
그러기엔, 우리의 웃어른들은 너무 material해져 있다.
까질때로 까졌고 볼 꺼 다본 우리들에게, 같은 필드에서 무언가 가르쳐 주기엔 울 어른들은 이미 너무 material해져 있다.

그들의 속은 우리에게 이미 안바도 비디오 식으로 같은 속물일 뿐이고, 자본주의에 충만한 우리들의 합리화된 판단기준을 입다물게 할 그 무엇이 웃 어른들에게 보이기 힘들어졌다. 서양식 fair정신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웃사람들이 몇명이나 버텨낼까? 그들 자신도 fair정신에 물들어 가고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우리들의 '어른화'과정에서 그 웃어른들에게 제대로 도움 못받는 우리들이 많아졌다는 것.
이런 길인데,
이런 길인데, 거기서 우리는.
이길을 잊기 위해 각종 자본주의의 이기를 잠시도 쉬지 않고 누리려 할 뿐.
막상 이렇게 길을 다시 인식하게 될 때, 우리에겐 이 길을 혼자 '제','대','로' 걸어가기 위한 도움과 배움을 대체 못받아, 내지는 받기 조차 싫게 (자본주의 이기들이 너무 좋아) 되어 있다.

기댈, 삶을 하나하나 손으로 가르쳐 줄 어른이 있고, 그런 어른에 대한 필요성과 존경성을, fair정신과 합리적인 정신이 아닌 무언가 영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깨달아 가며
어른들께 맞아가면서라도 바른 사람되는 길을 지도 받으며 또 한사람의 어른이 되어가던 모습엔,
그렇게 나마 받아나가고 싶은 가야할 길,
또한 물려주어야 할 길과 그 안에서의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나올 텐데.

그러기엔 우리 아저씨들은 너무 material하다.
게다가 그런 아저씨들에게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우리들은 우리2세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비칠까?
더 춥고 더 의미없고 더 물질적인 길들만이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군'과 '사'에만 반발했던 (그나마 내 세대엔 '사'에 대한 반발은 그나마 적었다) 우리와는 달리.
이제는 '부'에도 반발하지 않을까?

그나마 우리시대의 '그래도 울 어머니 나때문에 고생하셨는데'하는 힘든 삶을 사셔야 했던 부모님들과는 달리,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기 위해 그만큼 수고하지 않고 자유롭게 2세를 키우고 나면,
게다가 어른들에게 반발했던 자신의 모습이 비쳐져 2세들을 억압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반발을 사지 않으려 자유롭게 내비 두다 보면,
어른들보다 문명의 신변잡다적 기호품에만, 내지는 인터넷과 방송의 도저히 인격도 없는 떠도는 글들에게서 더 많은 것들을 입력받은 2세들이
만족을 주지못한 '父'를 향해 일어서지 않을까?
그들이 원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길이었다고?


안개속의 풍경을 봤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는 사운드트랙만 3개나 갖고 있으면서도 막상 영화보긴 처음이다.

영화보는 동안 미치는 줄 알았다.
뜸들이는 롱테이크의 장면장면들이 정말로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이렇게 심금을 건드리는 - 울리지는 않고 간당간당하게 계속 건드린다 - 영화는 간만이다.
천천히 천천히 다음 영화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