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미디어

백년간의 고독

세팔 2008. 10. 4. 00:58

하루키의 책을 끝내고 '이번엔 소설이다'싶어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고 있고, 지난 주 토욜에는 Into the wild를 보았고, 오늘은 어떻게 어떻게 알게된 방송국직원으로 부터 받은 초대장으로 T방송국의 야마자키상이 되어 롯뽕기의 디즈니 시사실에 가서 Wall-E (일본은 12월 개봉예정)를 보았다.

학부 4년생은 아무리 말을 해도 연구가 무엇이냐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이해 못하는 것 같고, 얼굴에는 무슨 바이러스라도 걸렸는지 오만상 불그럭푸르럭 무언가 나고, 혹시나 싶어 로봇만들 때 부탁해야할 학교내 공장 사람들과 함께 술자리를 하고 왔다.

"자네는 산 채로 썩어가고 있어"
..
그들의 대부분은 왜 그들이 전쟁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조차 몰랐다
..
불확실한 미래에 지치고 영원한 전쟁의 악순환 속에서 항상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나이를 먹고, 지치고, 미지의 세계에서 영문을 모르는 채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는 정신적으로 방황했다. 그가 쌓아올린 벽 밖에는 언제나 타인이 있었다.

이유도 모르고 서로서로 못죽여서 안달인 사람들이 판을 치는 한국 인터넷과 매스컴과, 그 뒤를 자욱하게 먼지나게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명심. 정말 도대체 무얼 보고 사람들이 살고 있나 싶은 세상이, 백년간의 고독과 함께 전개되며, 나를 더 이책을 이용한 (또) warp를 하게 하는 지 모르겠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불린다지만, 이 세상이 환상적인지 소설속 세계관이 차라리 믿기어 지는 건지 구분이 안간다.
분노나 물건만이 삶의 위로가 되고 있다.

벨을 울리는 장소에서 강단의 목소리가 잘 듣기지 않았고, 그의 직업상의 의무는 벨을 울리는 것일 뿐이기에 그 직원은 강연중 늘 고무 귀마개를 하고 있었지만, 가끔씩 구멍으로 쳐다 보면 남자는 늘 똑같은 내용을 외쳐대고 있는 것 같았다. 익사할 것만 같은 모습으로

- "나는 핵(核)시대에 상상력을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녀석은 정말로 완전히 최후의 심판 때 배심원석을 항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이 죽을듯한 맘으로 웅얼거리며, 자빠지며, 그러면서도 또 계속 지껄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막을 내릴 벨을 울리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그 직원은 왠지 모르게 근본적인 불안을 느끼며 생각했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미치게 만드는 것인가?  몇꺼풀을 더 까면 본질에 다다를 수 있는가? 무엇이 우리를 본질을 향한 노력에서 눈멀게 하는가?

I remember you well in the Chelsea Hotel,
you were talking so brave and so sweet,..

집으로 오는 자전거 어느새 나기 시작하는 야밤의 금목서향을 맡으며, Cohen의 Chelsea Hotel No.2를 들으며, 만난 적도 없고 만날 것 같지도 않는 you를 remember well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brave하고 sweet한 you 생각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가슴품에 숨겨둔 총을 끄집어 내어 보자. 총구를 닦으며 정신을 맑게 해보자

No nothing. Just be out there. Just be out there in it. You know, big mountains, rivers, sky, game. Just be out there in it, you know? In the wild.

인생의 단 한방을 쏠 수 있다면, 과연 총구를 겨누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
삶의 메타가 뭐라고 말해주는가? 아니 그 삶의 메타 자체를 겨누어야 하는가?

그래도 세상은 구원을 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