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미디어
피흘림과 용서
세팔
2007. 7. 23. 08:46
1948년 10월 27일 아침 고국 남쪽 여수의 애양원교회.
총살당한 두 아들 장례예배는 아버지 손양원 목사의 감사기도
1.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3남 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3.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주셨으니,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6.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감사합니다.
7.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8. 내 두 아들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9.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10.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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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흘림과 용서위에서 기독교는 자라왔는데.
점점 그것이 없어진 기독교가 되어간다.
물론 나부터다.
'피흘림과 용서'라는 무언가 있어 보이는 뉘앙스의 단어이지만..
사실 나에게는 '어렵다'는 레벨이 아니라 '하기 싫다'라는 레벨이다.
필요할때 필요한게 다 손에 들어오는 세상에서,
누가 사서 고생하는가?
자기 원하는 걸 이루어가기 바쁘고, 그 중간중간 좋은 것들을 즐기기 좋은 세상에서
무엇이 나에게 되지도 않는 '피흘림과 용서'를 motivate하는가?
그게 믿음이란 것인데.
나같은 사람이 많은 기독교라
욕을 얻어 먹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신앙의 선배님들이 이루어온 우리나라 기독교인데
나같은 사람이 그걸 다 깍아 먹고 있다.
기독교의 최대의 적은, 공산주의도 무슬림도 아닌, 자본주의이고 과학주의인 것이다.
그 둘이 피어난 곳에선, 기독교가 말라 죽기 쉽상이다.
차라리, 무슬림의 핍박을 받고 있는 곳이, 북녘땅 지하교회가 더 진실하고 참된 기독교일 것이다. 언제 어떻게 붙잡혀, 하나님 믿고 있다는 이유로 몰살당할지 모르는, 그래도 목숨걸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자본주의의 총아인 내가 요딴 말하는 게 우스울 뿐이다.
총살당한 두 아들 장례예배는 아버지 손양원 목사의 감사기도
1.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3남 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3.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주셨으니,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6.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감사합니다.
7.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8. 내 두 아들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9.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10.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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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흘림과 용서위에서 기독교는 자라왔는데.
점점 그것이 없어진 기독교가 되어간다.
물론 나부터다.
'피흘림과 용서'라는 무언가 있어 보이는 뉘앙스의 단어이지만..
사실 나에게는 '어렵다'는 레벨이 아니라 '하기 싫다'라는 레벨이다.
필요할때 필요한게 다 손에 들어오는 세상에서,
누가 사서 고생하는가?
자기 원하는 걸 이루어가기 바쁘고, 그 중간중간 좋은 것들을 즐기기 좋은 세상에서
무엇이 나에게 되지도 않는 '피흘림과 용서'를 motivate하는가?
그게 믿음이란 것인데.
나같은 사람이 많은 기독교라
욕을 얻어 먹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신앙의 선배님들이 이루어온 우리나라 기독교인데
나같은 사람이 그걸 다 깍아 먹고 있다.
기독교의 최대의 적은, 공산주의도 무슬림도 아닌, 자본주의이고 과학주의인 것이다.
그 둘이 피어난 곳에선, 기독교가 말라 죽기 쉽상이다.
차라리, 무슬림의 핍박을 받고 있는 곳이, 북녘땅 지하교회가 더 진실하고 참된 기독교일 것이다. 언제 어떻게 붙잡혀, 하나님 믿고 있다는 이유로 몰살당할지 모르는, 그래도 목숨걸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자본주의의 총아인 내가 요딴 말하는 게 우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