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고 들리는 것

디아스포라 우주인

세팔 2007. 12. 24. 02:04

올해의 마지막 주일 in Japan을 여전히 데니스에서 보냈다.
용식이가 남기고 간 서경식씨의 '디아스포라 기행'
아닐나 다를까 쑥쑥이다.

오랜만의 지극한 행복의 시간이다.
그가, 런던 외곽의 마르크스의 묘지앞에서 맞았다는 찬바람을
조금씩 공기가 희박해지는 지하실인 동경, 한복판 신쥬꾸근처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똑같이 가슴 콩닥이며 맞을 수 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discussion부터 책을 풀어나간다는 것은.
손으로 어딘가를 더듬으면서 자신이 한국인임을 자각하고 있으며, 또한 자기가 놓여진 일본이라는 곳을 싫어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일본을 항시 interpret 하고 있는 - "자이니찌"랑은 전혀 거리가 먼 단지 외국인인 - 나로서는..
'서경석'씨에서 나는 일본냄새를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다.

荘子は言うたことがある。「乾いた轍中の鮒は相互に唾沫をつけて湿気でぬらす」と。しかし彼はまたいう、「むしろ江湖にいて相互に忘れるほうがよい」と。悲しいことに我々は相互に忘れることは出来ない。
終わりに望んで血で個人の予感を書き添えて御礼とします。 -「私は人をだましたい」魯迅 1936年4月

たとえて言えば、かつて「江湖」にいた私たちの祖先は、植民地支配という洪水の時代に日本という「轍」の中に引き入れられていたのである。洪水が引いたあと「江湖」から切り離された「轍」に、私たちは取り残された。じりじりと水は干上がっていく。私が旅に出るのは、鮒が酸度不足に喘いで水面に顔をのぞかせるようなものだ。

박수를 치고 동감을 했다.
왜 이토록 일본은 우리를 메마르게 하는가?
'인간'보다는, 태어나면서 부터인가 '시스템'을 좋아하는 이곳에 있자면
저절로 바싹바싹 말라가는 기분이다. 가뜩이나 '시스템'을 견뎌하지 못하는 자로서

이제 일본이 '일본'이 아닌, 내가 속한 '사회'로 점점 화해가는 시점에서
구지, 일본이라서 일까?
아니면 어딜가도 이런 걸까?

inherent한, (나름) existential한 문제를
말도 한번 못꺼내 보는 나는
나를

디아스포라 우주인으로 보기로 했다.

데니스에 있으면서도, 지구 건너편 저기 런던의 찬바람을 '상상'만이라도 하며
숨통이 틔여라 하는

가끔씩 보이는 지구 틈새로의 우주의 한자락을 보고
삶의 만족을 얻는
다이스포라 우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