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가 그게 뭐야?"
한국을, 근원을 알수 없는 masculinity의 나라라고 본 적이 있다.
언젠가, 누군가 내 손톱을 보고 '남자가 무슨 손톱을 그렇게 깍냐고' 한 옆에 있던 사람까지 덩달아 입을 모아 나를 공격(?)했던 일이 있다. 남자면 손톱은 그냥 일자로 한번에 쑥하고 잘라야지 무슨 여자같이 동그랗게 잘랐다고... 내심 놀라면서 특정 한명도 아니고 옆에 있던 사람까지 같이 맞장구치는 걸 보고는 이 무슨 masculinity더냐 하고 혼자 입다물고 생각했던 적이있다.
'사내가 그거 뭐냐'
일본어로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문장.
먼저 '사내'라는 말을 감당해낼 단어가 없다. 男이라는 단어도 아니고 野郎, 男前..어떤 단어도 '사내가 그게 뭐야'의 '사내'에 넣을 수 없다.
사실 이 문장으로 일본애들의 성질을 건드려 녀석들을 좀 틀에서 깨트려보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인도에 가서 나오는 음식하나하나를 젓가락/포크로 살펴가며 체크하는 녀석들
인도까지 와서 '이식당 음식은 위험해서 못먹겠다'고 약간이라도 값싼데 가면 호들갑을 떨며 카레이외의 음식을 시켜먹던 녀석들.
터어키가서 기차역 시스템을 잘 몰라 일단 들어가보자고 하니, 나는 법을 지키는 자라면서 안쪽으로 들어가기를 그럽게 겁내하던 녀석들
세계 어딜가던 그동네 엘리베이터의 오른쪽에서 서야하는지 왼쪽에서 서야하는 지를 따지는 녀석들
하노이의 첫 아침. 나를 안내해주러 빙밍군이 마중나왔을 때, '엥? 차가 아니고 오토바이야?'하고 의외라 생각하면서 그냥 주는 대로 헬멧쓰고 열심히 따라 다녔다. 나중에 매염때문에 목이 아픈 것 말고는 (빙밍녀석도 나중엔 목이 잠기더군..) 현지인과 같은 시선에서 하노이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는 게 너무 신났었다.
그러고는, '이거 나말고 다른 일본애들 왔었으면 큰일 날뻔 했네..'하는 생각. 아슬아슬한 운전들 (좌회전 우회전 갑작스런 유턴도 신호하나 없이 다 해낸다), 틈과틈사이. 저속/고속의 변환과 멈춤. 서로사이의 타이밍을 적절히 읽지 않으면 길도 못 건널 뿐더러 차선도 못 바꿀것 같은 운전상황이었다만, 난 그냥 빙밍녀석만 믿고 뒤에서 즐기고 사진이나 찍어대고 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오토바이를 탈 수 있냐고 안전을 못 믿어하는 한국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고..
어? 그 masculinity는 어디간거야? 왠 womanization?
사실 나도 얼토당토 않는 말도 안되는 행동을 객기로 마구하는 한국 사람들을 보고.. 그걸 사내다움과 머시마 스러움이라고 주장하며 강요하는 사람들을 보고 혀를 두를때가 많은데, 그런 나의 행동조차도 객기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니! 나보다 더 womanize 된 사람이 있다니!
(내지는 이런 현상을 womanization으로 보는 내 시선 자체가 한국의 masculinity의 피해자 내지는 가해자일 수도 있으나..)
자주 말하지만 내 여행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들이란..
스페인 말라가공항
밤11시에 도착한 뒤, 11시 30분의 마지막 공항열차를 타러, 야외역 플랫폼에 서 있을때.
주위는 아무도 없고, 주황색 가로등이나 저멀리 몇개 켜져있고. 비실비실한 불빛하나로 아득한 역. 컴컴한 저너머 처음 보는 땅에서의 혼자 맞는 어두운 공간에 짐가방하나 달랑들고 서있던 시간.
인도 뭄바이
어쩌다 퇴근길 전차를 같이 타게 되어서 초만원, 이랄까 터져죽겠는 전차안에서.
인도아저씨들의 견실한 몸(이나 주로 배?)에 눌려서 낑낑거리며, 차안의 힌두어 방송을 들으며 도대체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창밖도 안보이던 그순간. 어딘지도 모르고 어디로 갈지도 모르며 전혀 다른 사람들 사이에 혼자 낑겨있었던 순간.
두근거리고 두고두고 못잊을 순간이다.
어떤이에게는 미치자고 그런 짓하냐고 보일 수도 있고, 어떤이에게는 그거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난리치냐고 이야기 들을 수도 있지만. 내겐 딱 좋은 경험이었다.
참.새.가.슴
가능하다면 조금씩 조금씩 영역을 넓힐 수 있다면.
호시노 아저씨의 글들에 그렇게 열광하는 것은 그는 내가 가지 못하는 엄두도 못내 하는 그런 영역을 혼자 뚜벅뚜벅 갔었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까지 객석에 앉아서만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