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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아버지 되기

보이고 들리는 것

by 세팔 2007. 3. 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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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책의 한부분을 왕창 옮겨 적어도 되나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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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이었다. 바쁜 일로 떄를 놓치고 늦게 어느 음식점에 들어섰다. 빈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였지만 가득찬 손님들 탓인지 음식이 늦어지고 있었다. 나는 무료하기도 해서 북적거리는 음식점 안을 빙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바로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시선이 멈췄다. 누가 보아도 허름해 보이는 낡은 양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넥타이를 맨 머리 하얀 늙은이와 한복을 곱게 차려입었으나 손등이 새까만 부인, 그리고 신사복을 말끔하게 입은 젊은이가 갈비를 시켜놓고 먹고 있었다. 숯불 위에 놓인 석쇠 위에서 갈비가 연기를 뽀얗게 내며 타고 있었다.

무심코 보고 있으려니 갈비가 까맣게 타고 있는데도 누구도 젓가락으로 갈비를 뒤집거나 집어내어 먹으려 하지 않고 말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꺠닫게 되었따. 나는 이들의 모습에 호기심이 솟아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다름 아닌 한 가족이었따. 시골에 사는 부모가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였다가 함께 점심식사를 하귀 위해 갈비를 숯불에 올려 놓고 앉아 있는 것이었따. 늙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들이 먹도록 젓가락을 놓고 있었고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드시도록 젓가락을 놓고 있었다. "야, 많이 먹어라"하고 아버지가 한마디하면 어머니는 "오랜 객지 생활,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얼마나 힘들게 공부를 했니" 한마디를 하고 아들은 "학비 보내주시느라고 얼마나 힘드셨어오. 이제 취지이 되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고기 좀 드세요" 하는 것이었따. 이들 핏줄이 서로를 생각하며 젓가락을 놓고 있는 사이 갈비는 까맣게 타고 있었다.

이들 옆에서 시켜놓은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나는 자꾸만 목이 메어 절반쯤 먹다가 수저를 놓았다. 그때였다. 옆자리의 노인은 창창한 목소리로 "네가 취직한 회사가 어디 있고 무엇을 하는지 배우지 못한 아비라 알 수 없지만, 너는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나오고 회사에 취직까지 한 처지임을 생각해서 열심히 일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잊지 말 것은 돈을 벌어 이 늙은 부모를 호강시키려고 하지 마라. 단지 훌륭한 인간이 되어서 남에게 존경받도록 해라. 취직했다는 것은 돈만 벌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하고 일장 훈시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음식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서재에 앉아 창 밖 캄캄한 밤하늘에 불을 반짝이며 느릿하게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내 졸업식 날과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내 대학 졸업식을 마치고 온 가족이 집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었다. 식사가 끝나고 한참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다 각자 자기방으로 돌아가려고 일어서자 아버지는 나를 불러 앉혔다. 그리고 아버지가 글을 쓰시려고 놓아든 밥상가로 내 손을 잡아당겨 곁에 앉게 했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가 졸업해서 아버지는 기쁘다" 하시더니 가슴에 나를 껴안는 것이었따. 어린아이처럼 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는데 내 목뒤로 아버지의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한참을 껴안고 있다가 "사람이 온전해야 세상을 바르게 살 수 있다. 이제 너도 취직을 했으니 너의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하는 일들은 모두 인간답게 훌륭하게 살아가기 위한 것이란 목표를 잊어버리면 아무런 보람도 없이 이 세상을 살다가 가게되는 거야" 하셨다. 나는 "알았습니다"라고 대답을 하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인간다운 삶의 실체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막연하게 꿈꾸었을 뿐 곧 직장 일에 매달려 살아왔따. 그러다가 갑자기 음식점에서 만난 한 가족의 대화를 곁에서 듣고 돌아와 앉아 있는 순간 아버지의 이말슴이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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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서 용우 선물 사오려고 두리번 두리번 하던 중, '수필로 하자'라는 생각으로 수필코너를 머뭇거리다 박완서씨의 수필과 이리저리 견주다 사온 책이 바로 박목월/박동규의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책이다.
사실 그다지 책을 고를 시간이 없어서 그냥 작가와 책제목만 보고 사온 책이었다. 그래도 주기전에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어제 비행기 타면서, 오늘 나가오까[長岡]에 출장오면서 훌 다읽어 버렸다. 용식이한테 선입견을 줄 것같아 (구닥다리... 전형적인...등의) 이야기 안할려고 했는데, 꼭 베껴 적어 놓고 싶은 글들이 많아 하나 옮겨 적었다.

늘 그립고 허전하고 찾고 다니는 것이 이런 한국의 부성이 아닐까? 애타게 찾고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어하는 것 또한 이것이 아닐까? 가정을 지킬 줄 알고, 자기 핏줄에게 가야할 길을 보여 줄 수 있는 그걸 푯대로 해서 나가고 싶은 게 아닐까?

그게 안되어서 물질로 물건으로 애써 채워보지만, 그럴 수록 목마를 뿐인.
이제 일로 매진해서 '대단했던 여름'을 만들어야 하는 계절 앞에서, 자꾸만 뒤로 물려 나려고 하는 내게, 지쳐서 전봇대 밑에 꿍그려 앉아 혼자 끙끙거려야 해도 열심히 달리셨던 아버지들의 모습은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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