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하늘에라도 날아 올라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천천히 걸어 갈 수가 없어서 대학캠퍼스를 마구 달렸습니다.
높은 언덕배기에 위치한 이 캠퍼스에선 아득히 멀리 빙하를 감싸고 있는 알라스카 산맥의 등선이 뚜렷하게 보이지요. 그 산의 풍경이 나를 부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꼭 지금 같은 부드러운 초여름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때이지요."
- 여행하는 나무 : 호시노 미찌오
모두에게 비밀의 장소가 있다.
고등학교, 정확히는 학력고사를 마치고 하릴없이 지내던 93년 1월인가 2월에 나는 그것을 발견했다.
대구에 펑펑 눈이 오던날, 이곳저곳 전화를 걸어봐도 딱히 같이 놀만한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두류산에 올라갔다.
두류산에 올라간 적이 한번도 없던 나였지만, 눈에 이끌려 무작정 올라 간 것이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었던 기억이난다. 정상에 올라가, 몇명 나이드신 분들을 보고 내려 오던길.. 큰길을 피해 이상한 길을 찾아, 한사람이 겨우 갈 산길을 발견, 내려가다가 만난 곳이다.
역시 한사람만이 앉을 수 있을 공간이 나무 밑에 있었다. 거기 앉으면 두류산에서 대구시내를 바라 볼 수 있었다.
아직 스무살이 안된 나이에, 일본행을 앞두고, 혼자서 눈내리는 두류산에서 나는 대구 시내를 바라보았다.
그 때는 젊었고, 순수했고, 무언가에 집중할 불타는 의욕이 있었다.
그게. 14년 전이다.
이제 더이상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내 자신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 때의 나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거대한 역사의 하나의 먼지 같은 존재로 化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