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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야기이야기

보이고 들리는 것

by 세팔 2008. 11. 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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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모두가 텔레마코스야, 그렇지?'
- 학생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소리내어 읽으려 하다.
- 그들은 분명 이야기를 갖고 있다. 
- "음, 전 조 모리슨이구요? 전 미내소타 출신이구요? 파크 래피즈라는 소도시 있잖아요? 그리고 아, 제생각에는, 아직 모르겠어요, 제전공이 뭐가 될지?"
- "진실을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 그걸 직접적으로 말할 방법이 없단 말이야"

- 미디어의 위력에 짓눌린 나머지 부모들은 뻔뻔스럽게도 아이를 가르치려 든다.
우선 부모들은 가상 고상한 목표를 두고 노력한다. 영혼의 형성 말이다. 미리 계획하거나 의논한 적은 없었지만, 아내와 나는 반계몽적이고 끊임없이 빠르게 몰아치는 미디어의 전자리듬에 맞서 느리고 사실적이고 일화를 수반하며 열려있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려고 저항전선을 세웠다...
- 아이들의 본성을 완성시켜 줄 많은 소중한 것들을 미디어는 앗아간다.
우리는 그것들을 다시 집어 넣으려고 시도하지만 때때로 이 모든 문제가 거의 우리 손아귀를 벗어나버린게 아닌가하는 분노에 사로잡힌다.

-플라톤이 우리를 놀리는 걸까? '국가'의 사회적 이상들은 권위주의적인 것과 대책없이 순진한 것을 뒤섞어 놓은 것 같다. 때때로 어떤 제안들에선 빈정거림과 조소의 기미가 보이지만 그 어조는 파악하기 어렵다. 조롱당한다는 걸 감지하면서도 우리는 정확히 어떻게 조롱당하는지를 모른다. 
- 한편으로 그는 '무법적인 욕망'을 변치 않는 본성인 양 언급하지만 교육을 논할 때는 훈련에 의해 인격이 무한하게 다양한 양태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지지하는 듯 보인다. 그 바탕에는 인간이란 오직 자신이 들어온 행위만을 실행하기 마련이라는 발상이 깔려 있다
- 따라서 영웅은 마음을 푸근하게 위무해주는 음악을 들어선 안 되고 오직 군가만 들어야 한다.우리의 수호자들에게 초감성적인 말러Mahler는 안된다. 록앤롤도 마찬가지다. 오직 수자와 군가가 있을 뿐이다.
- 물론 플라톤의 사상을 쉬이 내칠 수는 없다.


-'본질'을 믿는다? 미국의 문화적 좌파에게 진리의 보편적 이데아라는 플라톤의 개념은 허망한 것이었고, '본질주의' 혹은 '근본주의'라는 일급 범죄의 한 사례였다.
- 플라톤의 국가의 가장 놀라운 부분인 제6권에서 지식이론을 전개했다. 그는 지적 기능의 위계서열을 보여주는 일람표를 상정하는데, 거기서 최상층에는 그가 '지성'이라고 부르는 것, 혹은 선good - 지식의 대상들에게 존재를 부여하는 원천으로 정의 되는 '선'-의 이데아를 인식하는 것이 자리한다.
- 한사람(수호자 유형)이 구속에서 풀려나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걸 상상해 보자. 그는 환영, 믿음, 추론적 사고, 지성이라는 각각의 영역들을 거치며 올라가선 마침내 선good, 즉 태양을 보게 된다. 이제 그는 세상의 진짜 대상들, 이데아들을 직접 볼 수 있다. 
- 그에게 용기가 있다면 이러한 밝은 광경 속에 남아 있지 않고 한 번 더 내려가서, 어떻게든 반대를 무릅쓰고 동굴 속의 오랜 동료들에게 그들이 환영의 세계 속에 살고 있음을 설득하려 할 것이다. 철학자 왕의 영웅주의는 바로 그가 돌아온다는 데 있다. 고귀한 의무 Noblesse oblige.

-우리 중 다수는 더 이상 '보다 고상한 것들'에 고유한 가치를 두지 않으며 '절대적인 진리'의 탐색을 포기했다. 우리는 하나같이 동굴, 미디어의 동굴 속에 있으며 모상들 중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것들을 선택한다. 우리는 다수의 부분적인 진리들을 포용하는 데 있어 자유롭다.
-하지만 그 와중에 플라톤이 성공적인 국가에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공동체 정신과 탁월한 지적 권위에 대한 존경심을 우리는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어떤 한가지 개념이나 의견을 다른 것들보다 나은 것으로 확립할 수 있는 단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이 우리에게는 없다. '선'의 정당화는 매번 처음부터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실용적인 견지에서 보자면 선의 '이데아'는 쓸모가 없다.
-그는 초월적인 이상이 아니라 그 기능, 결과 또는 목적으로 한 사물의 가치를 사고했어. 하나의 탁자가 탁자인 건 그것이 어떤 이상적인 탁자의 형상을 나눠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탁자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인 거지
- 아리스토텔레스가 상대주의자는 아니야, 안그래? 그는 어떤 것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목적이라고, 목적은 경험이 사직되기도 전에 존재하며 대상의 본성에 깃든 것이라고 믿었어. 어린아이의 '목적'은 어른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왜 그가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지 설명해주지. 
- 아리스토텔레스는 내부에서 출발해서 외부로 상승하지. 존재보다는 생성인거야. 보편적인 것은 플라톤에서처럼 초월적인 어떤 것,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야. 그것은 대상에 내재한 실체이자 거기 존재하며 그에 대한 의문은 있을 수 없어.

데이비드 덴비의 위대한책들과의 만남1을 잠시의 휴지기를 넣어가면서 다읽었다. 
이타카를 三鷹로 듣는 내가 그나마 일리어드/오딧세이/아이네이드 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알게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서의 이야기에 흥분하게 된 것은 (위의 내용이 그 발제), 뉴요커의 장수하는 영화 컬럼니스트다운 말발을 이 책 곳곳에 심어놓아 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책은 두껍다. 좋았던 부분만을 발제해도 또다른 책한권이 될만한 양이다 (게다가 下권 한권이 더 남아 있다). 중간중간 나를 '그립게'해준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학생들은 미디어를 통해 익힌 빈정거림과 역할 연기에 대한 감을 갖고, 어떤 것이든 조정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문학을 대한다. 그래서 진정 단호한 성격을 마주치면 짜증이 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설령 우리가 스스로 정열을 못 느끼더라도 정열을 신봉했고 정열에 외경심을 가졌다.

세계 어디나 이런 시절이 있었는 데... 하는 생각. 어쩌다가 이 세대는 cool한 것을 좋아하게 되었나? 하는 생각.. 듬직하고 조르바같고 뜨거운 사람들은 그나마 책에서 보면/ 영화에서 보면 받아들일만 하다만 일상생활에서는 참기힘들 때가 많다.
이건 시대의 흐름이란 말인가? 자본주의가 침투하고 이성주의가 침투하고 상대주의가 침투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맞이하게 되는 흐름이란 말인가? 한참 뜨거운 중동의 간혹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하는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hot보다 cool한 것을 좋아하게 될까? 오로지 한 생각밖에 없어보이기 까지 하는 그들도 씨익하고 냉소적으로 사람과 그들의 코란을 보게 되고 뜨겁게 춤추는 그들의 선조를 보고 비웃는 날이 오게될 것인가?

- 플라톤만큼이나 성경의 저자들은 구경거리와 시각적 재현을 싫어했다. 고대의 글이 지닌 심원한 도덕적 명령이 우리 현대인들에게 맞을 리가 없다.
-우리는 인생의 상당한 부분을 볼거리들을 관람하며 보내면서도 '바커스의 신녀들'에서 은신처로부터 끌려나와 잡아먹히고 마는 애처로운 왕처럼 처벌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세계는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이 세계에서 시각적인 모상을 송두리째 씻어내기란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바커스의 신녀들'을 평하는 저자의 눈길은 무릎을 치며 '옳거니!'였다. 미디어의 동굴에서 모상의 세계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우리가, 언젠가는 현실의 세계로 불려나가 호된날들을 맞이하게 되는데, 과연 우리가 그걸 참고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비바람과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오로지 만들어 내는 텍스트라곤 자식들에게 '이런 고생하지말그라'이셨던 우리 선조들은 현실을 이겨 내시고 그안에서 비틀려 짜진 소량의, 하지만 엑기스인 모상을 만들어 내셨었다. 허나 이 세대는 겪고 이겨내야 할 현실은 마다하고 허구에 지나지 않는 모상만을 좇는다. 

먹고 살아남기 위한 일과 사람들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언제나 버려 버리고 바꿔치기 할 수 있는 contents가 없는 것들이고, 맘속의 있어야만 할 이미지들은 편하고 아름답고 있어보이고 '넌 착하고 잘하고 있어'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신앙에 대한 부르주아적 변형 즉, 체제는 힘든 노고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세속적 신앙이다.

그나마 현대를 달리게 했던 이런 세속적 신앙마저 붕괴되어 가는 기분이다.
혹.
이런 붕괴는 로크의 노동의 합법성, 면죄성, 신성성을 뒤집고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지나, 아우구스티누스, 플라톤의 세계로 우리를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cool해봤자 먹고 살길 안나온다는 아줌마/아저씨들의 팔걷어 올림으로 우리를 되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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