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이모야도 돌아온다지만(점점 의심스러워지지만...), 트레이시 챞먼여사가 돌아와 있었다.
남자가수가 레너드 코헨이라면, 여가수는 트레이시 챞먼이다. 들으면서 싱크로 하고 맘을 달랠 수 있는 건.
언젠가, 한국 가는 뱅기를 못타고 (또?) 홧김에 산 그녀의 Telling stories 앨범이 얼마나 긴 기간동안 나를 위로했던가
Telling stories뿐만 아니라 Unsung psalm에서 시작해 그 이전앨범들에서도 Crossroads, Fast car, Bang bang bang, Open arm,Give me one reason , She's got her ticket 등등.. 명곡이 즐라리..
가사를 자근자근 씹으면 한돌님같이 날 위로해 주는 곡들이다.
그랬던 그녀가, Talking 'bout a revolution를 불렀던 그녀가
그런 그녀가
There’s nothing, I wouldn’t give
For one more time, when I can sing for you
라고 노래를 한다.
좀 쓸쓸네. 여전히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의 노래를 듣기를 바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I remember there was a time
When I used to sing for you
<계림. U4R. Oct 08>
그렇지만 이 겉모양이란 실로 얼마나 불안한가. 어째서? 그에겐 진정한 무지개가 없었던 까닭이다.
붕어와 까마귀를 속이고 왔기 때문이다. 강변 포플러 숲 위에 뜨던 별과 구름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언덕위에서 연날리던 그 바람을 뒤로 했기 때문이다.
그가 과학으로 밥벌이를 하고, 손마디의 굳기에 매진할 수록 마음 한구석엔 허전한 바람이 스며 이를 달래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요컨대 그의 '내력'이 핏줄속에서 그의 길을 훼방놓고 있었다.
-"비도 눈도 내리지 않는 시나가와역", 김윤식
겨울은 더 뜨거워져 가고 마쳐져가는 한해는 사람을 광기로 몰고 가지만, 도대체 우리 사회는 무얼 베이스로해서 세워져 있던거야 하는 일들이 전세계적으로 일어나 떠들썩도 하지만, 내지는 우리가 믿고 바라고 그안에서 기어올라보자고 터잡고 있던 것이 얼마나 빈약한 허구적인 것이었나를 이제서야 알게 하지만, 또 내 나름대로의 과학을 제대로 몰고가지도 못하는 것 같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귀찮아만 하는 내가 있지만.
포플러와 히말라야시다와 흙들과 앉아서 쇠깎던 아저씨들, 길가에 수북히 쌓였던 낙엽 밟던 남의 동네 아파트길들이 있었고, 있음을 기억하라.
속이고 떠나온 강변 포플러가 사라져간다고 해도 말이다.
더 불쌍한건 커올라오는 다음 사회다. 그들에겐 붕어도 까마귀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도 없이 실체없이 커지기만 한 이상한 경제제도의 부풀려진 모습밖에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다.
<이미 없어졌을 대구 칠성동, A 35-105 + ist Ds, Dec. 07,
이런걸 없애고 월가에서, 또 어디에서 구불리고 부풀린 자본을
이곳에 쌓아올려 또 한번 그걸 부풀려 보려하겠지만
결국 실체없이 언젠가 무너져 버릴 것이 아닌가?>
돌아갈 곳도 없이 나 몰래 사라져만 가는, 순자가 있던 길과 그 두부집 골목길, 선반돌아가는 소리, 연날리던 겨울옥상 바람이 내 핏줄속에 흐름을, 그들이 사실은 흐려진 내눈을 바로 잡아줄 수도 있음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