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어가 있기는 한 건가? 예리하게 틈이 벌어진 것은 기억이 아니라 이성이었나? 단 하나의 단어, 단 한 번 나온는 단어를 잊었다고 해서 어떻게 거의 이성을 잃을수 있을까?
단어를 잊은 것이 강의실에서 시험지 앞에 앉아 있는 상황이라면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사납게 울부짖는 바다를 마주하고서도? 저기 앞에서 밤하늘로 스며드는 검은 바다는 이런 불안을 완전히 무의미한 것으로, 쓸데없는 것으로, 균형 감각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나 신경쓰는 것으로 쓸어가야 마땅하지 않은가?
10시 좀 전에 도착. 메일 급한 것 처리 후 지난주 갔다온 학회보고를 위한 ppt작성 및 새롭게 이름을 알게된 behavioral approach와 내가 올 여름했던 연구와의 연관성을 확인 후 식사하고 미팅.
만들어야 하는 연구소개 포스터 관련 언제까지 어떻게 만들라는 지시 내린 후, 발표하며 겁먹어 쩔쩔매는 석사1년차 녀석 어깨한번 쳐주고, 꽤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레벨에 이른 석사2년차 녀석 연구 재밌게 들어주고, 대만에서 온 포닥녀석의 연구와 기존 연구와의 근본적 차이점 한번 디스커션하고, 학회보고...
미팅 후 지난주 도착한 힘센서와 수신보드의 영수증 정리 각각 두군데에 신청 후 정리. 로봇 안 움직인다고 하는 학부생 녀석 체크할 사항 이야기 하고 시킬 것 시킨후 여기여기에 연락해 보라고 연락처 알려준 뒤 베트남에서 갖고 온 커피함 만들어 먹어보고, 1월 20일 내가 발표할 내용의 페이퍼 인쇄위한 제2고 논문체크 후 답장
식사 뒤 그저께 technical committee의 미팅에서 들었던 rbode plot에 대한 pdf모아서 인쇄함 때리주고.
12월 24일 집에 오니 밤 11시20분
돌아 오는 길이 허전했던 건.
내가 오늘 잊어버린 단어를 찾으려 끙끙거렸음이 없었음이리라. 어찌 오늘뿐인가. 내게 잊어버린 단어가 있다는 것 조차 잊고 지내지 않는가? 간절히 찾고 바라고 갈망해야 하는 잊어버린 단어가 있다는 걸. 잊은 단어를 애써 기억하려 노력하는 내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 뿌듯해지는 그 잊어버린 단어를 말이다.
아니었다. 쏴아 소리를 내는 드넓은 바다가 언어와 낱말의 기억이나 망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단 하나의 단어. 말과 단어는, 눈 먼 채 침묵하는 바다가 손댈 수 없는 먼 곳에 있었다. 온 우주에 단 하나의 단어.. 그 단어는 이세상의 모든 수평선 저편에 있는 밀물보다도 더 강하고 더 투명하게 빛날 터였다. --- 이상, 리스본행 야간열차
내가 잊은 그 단어를 찾으려 해야한다.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꾸자꾸 멈춰 앉아서 골몰히 생각해야 한다.
뭐 그깟 단어 가지고.. 라 비칠 줄도 모르나, 어찌 그 잊어버린 단어를 찾으려 함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관객임에 익숙해진 우리 인생이 가끔 "현실"에 부딪힐 때, 그 단어를 갖지 않고 견딜 수 있는가?
하노이 구시가지의 어둔 불빛아래 길가에 앉아 있던 풍경들을 보며 아련해 했던 내 눈빛을 의미있게 해 준 건, 그로 인해 나의 잊은 단어를 향한 마음을 되살려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터질 것 같은 일상생활의 우리를 잠잠히 달래 줄 수 있는 건, 우리에게 잊고 있는 단어가 있음을 기억해 내고 그걸 찾으려 함이 아니던가?
단어를 생각해 내려고 하는 과정의 모든 정신과정, 그게 배부름이든 울부짖는 울음이든, 그게 인생이란 단어와 同價가 아니던가?
법정인 타인들 사이에서 신기루처럼 헛되고 변하기 쉬운 친근함 가운데서 가장 진실하게 자기를 확인하고 굳게 하는 건 잊은 단어를 찾고 있는 자신을 확인함이 아닌가?
"겨울밤이었다. 이웃집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매서운 바람은 창 틈을 비집고 방안에까지 눈발을 흩날린다. 눈은 등잔에도 벼루 위에도 떨어진다.
군불도 때지 못한 냉골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공허한 물음을 되뇌인다. 화로의 식은 재 위로 뜻도 모를 낙서만 계속한다. 가물대는 등불을 가만히 쳐다본다.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허망한 그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러다 문득 옛 사람의 위대한 행실과 고상한 절개가 역력히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똑바로 앉아 눈썹을 내리 깔고 손을 모은 채 '논어'를 읽는다. 처음에는 꺽꺽하던 소리가 차분해지더니 답답하게 차 오르던 기운이 가라앉고 정신이 맑고 시원해졌다" ---- 이덕무